카레로 배부른 이야기

집 근처에 네팔인지 파키스탄인지 인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레 전문점이 있다. 그 앞을 지나갈 때면 항상 맛있는 카레 냄새에 홀린 듯 고개를 돌려 쳐다보게 된다. 가게 입구 바로 옆에 주방이 있는데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열심히 난 반죽을 만드시는 네팔 혹은 파키스탄 혹은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주방장님과 눈이 마주치고 아이컨택이라고 쓰고 어여 들어 오세요라고 읽히는 압박을 받고는 한다.푸근하게 웃으시는 주방장님 귀여우심. ㅎㅎㅎㅎ

사실 이 카레 가게는 근처엔 분점도 몇 군데있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. 결정적으로 우리동네에 있는 이 집이 무려 본점이다. 텔레비전 보다보면 가끔씩 광고도 나온다. ㄷㄷㄷ 물론 지역방송 로컬 광고겠지만, 꾸준히 티비에 나오는 게 어디야.

무엇보다 여기 참 맛있어서 좋아하는데, 테이크 아웃보다는 매장에서 먹는 게 훨씬 세트도 많고 더 저렴하다. 샐러드도 주고, 망고 라씨 같은 음료도 주고, 푸딩 같은 디저트도 나오고 매우 좋음. 내가 처음 이 동네 이사 온 날, 짐 풀고 나와 이 집 카레를 저녁으로 먹었다. 그래서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. 어색함과 긴장, 설렘의 맛이 난다고 하면 그건 촘 오바겠지. ㅎㅎ

오늘 퇴근길에 갑자기 카레가 너무너무 땡겨서, 테이크 아웃 후 잽싸게 자전거로 분노의 포풍질주를 하여 집으로 귀가. 나의 소중한 카레와 난이 식으면 안 되니까요. 당연히 먹기 직전의 사진따위 없다.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 무슨 사진이냐능.

고생한 보람은 있었다. 집에서 열어봤더니 아직 따끈따끈 했다. 오오. 감격감격. 허벅지 근육이 딴딴해 질 만큼 밟길 잘했다. 아 물론 안전운전 했습니다.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.

이 집은 주문할 때 여러 종류의 카레와 난 중에서 고를 수 있다. 또한 매운맛의 정도도 선택 가능한데, 절대로 보통을 시키면 안 된다. 정말 하나도 안 맵거든. 이런 부분은 철저히 현지화 되었음. 직접 본고장의 카레를 먹어본 건 아니지만, 일본인들이 무난하게 먹을만한 맛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다!

매운 맛을 좋아하는 손님이 주문할 수 있는 매운맛 최대는 100배. 내가 이제껏 가장 맵게 먹었던 게 20배 정도였는데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먹으면서 점점 더워지는 그런 맛이었다. 이번엔 몸 사려서 10배로 무난하게 가 줬음.

난은 내사랑 치즈난. 속에 모짜렐라 치즈가 잔뜩 들어있어서 매우 맛있다. 플레인난도 맛있지만, 살이 유난히 찌고 싶다는 생각(...)이 들 땐 칼로리 걱정은 하늘로 날려버리고 자신있게 치즈난으로 오다를 때리는 겁니다. ㅇㅇ
갓 만든 건 치즈가 쭈욱쭈욱 늘어난다. 허나, 유일한 단점은 식으면 치즈가 굳어서 급속도로 맛이 없어진다는 것. 내가 열심히 밟은 이유 중 하나.

치즈난만 시켜도 배가 터지게 먹는데도 오늘은 주문하면서 탄두리치킨도 단품으로 시켰다. 점원의 접객 매뉴얼에 항상 들어있는 마지막 질문 "더 필요한 건 없으시고요?" 에 평소라면 "없어요" 쿨하게 갔을텐데 내 눈은 메뉴판을 열심히 훑고 있었지. 탄두리치킨도 부탁을... ㅠ 몰랐는데 요즘 기간 한정으로 세일하고 있더라. 몇 십엔 싸게 먹었어. 그럼 됐잖아. 내 몸은 지질과 단백질을 원했던 거다... 본능에 약한 녀자, 나란 녀자.

탄두리치킨은 세트를 시키면 맛뵈기로 조금씩 들어있어서 그 정도 양이겠지라고 지레짐작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켜봤는데 오 마이 갓. 사위가 처갓집에 가면 장모님이 잡아주신다는 토종닭 클라쓰의 엄청 튼실한 닭다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거 아니겠음요. 비주얼만 보고도 배가 부를 지경.

결국 맛나게 양념된 닭다리를 야무지게 쭉쭉 찢어서 카레에 찍어 촵촵해주시고, 또 치즈난도 몽땅 흡입하려 했으나 반만 먹고, 일단 나머지 반은 남겼다는 사실. 카레도 적당히 남아서 내일 아침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다가도 이거 냄새가 장난없이 나는데, 출근 전에 먹어도 될까 조금 걱정된다.

탄두리치킨이 레알 신세계였음. 의외의 수확! 앞으로는 요것만 시켜서 맥주랑 먹어도 매우 훌륭할 거 같다.
완전체 치맥의 마지막 퍼즐을 찾았다!
정작 사진이 한 장도 없어서 음식밸리말고 일상밸리에 올립니다. 껄껄.
다음엔 꼭 사진을 남겨야지. 이 집 카레를 그리워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으니.